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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피정의집/재속 프란치스코회

「유엔」 1-3에 나타난 자비 체험 ㅡ 고계영 파울로, OFM (작은형제회)


「유엔」 1-3에 나타난 자비 체험

고계영 파울로 OFM (글라라형제회 영보)

프란치스코 아씨시 성인의 「유언」 1-3절은 프란치스코의 글 안에서는 아씨시 성인의 첫 번째 신비 체험에 해당된다. 이 「유언은 그의 생애 마지막 무렵에 쓰여졌지만,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 유언을 작성 하는 바람에, 공교롭게도 그의 회개 생활 초기의 신비 체험이 유언의 맨 첫 부분에 나타나게 되었다. 자신의 영적 체험에 대해서는 극도로 말을 아끼며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절제했던 프란치스코가 그의 첫 신비 체험을 지상에서의 관상 생활이 마무리되는 죽음의 시점에서 그 스스로 고백했다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많다 하겠다. 그 유언은 이러하다:

1주님께서 나 프란치스코 형제에게 이렇게 회개를 시작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죄 중에 있었기에 나에게는 나병 환자들을 보는 것이 쓰디쓴 일이었습니다.
2 그런데 주님 친히 나를 그들 가운데로 이끄셨고 나는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자비를 실행하였습니다.
3그리고 내가 그들에게서 떠나올 무렵에는 나에게 쓴맛이었던 바로 그것이 도리어 몸과 마음의 단맛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얼마 있다가 나는 세속을 떠났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지난 회개 생활이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이루어진 은총의 삶이었음을 죽음을 맞이하며 유언으로 밝혀 놓았다. 이 유언에서 주체는 전적으로 하느님이시고 프란치스코는 단지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흐름은 「유언」 23절까지 계속된다. 이를 염두에 두고 「유언」의 첫 부분을 읽으면, 2절의 '나는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자비를 실행하였다'는 구절에서 '내가 자비를 실행했다. '내가 뭐를 했다"는 관점은 왠지 프란치스코 답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라는 주체, 즉 '예고'(자아)가 너무 강하게 너무 꿈틀거려 하느님의 섭리적인 이끄심이 자리할 여지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 구절을 라틴어 원문과 비교해 보면 '착한 사마리아 사람 비유가 나오는 루카 10.37의 '그렇게 자비를 베푼 사람'이라는 구절과 대단히 유사하다는 사실을 즉시 알 수 있다. 프란치스코 「유언의 '그들과 함께 지내 면서'라는 표현은 이 「유언을 전해주는 사본에 따라 '바로 그들에게' 또는 '이들에게' 또는 '그들에게'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런 사본들은 '나는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었습니다."로 이해하는 것이라 하겠다. 예전 우리말 번역본에서는 이 부분을 '나는 그들 가운데서 자비를 베풀었습니다.'라 옮겼다. 그러나 카에탄 에써는 그의 비판본에서 '그들과 함께'를 본문으로 선택하였고, 에씨의 그러한 선택은 프란치스코 「유언」 에 흐르는 은총의 섭리와 잘 어울린다. 새 번역본에서는 "나는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자비를 실행하였습니다.'로 옮겼지만, 여전히 번역상의 문제점이 남아 있다.

「유언」 1-3절을 읽을 때 유의해야 할 또 다른 점 하나는 프란치스코가 '나병 환자들'을 일관되게 복수로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유언」 1-3절에 나타난 단맛 체험은 프란치스코가 우연히 나병 환자 한 사람에게 다가가 입을 맞추고 포옹하는 사건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유언에 나타난 프란치스코의 자비 체험은 나병 환자들과 지속적으로 지내는 가운데 일어난 것이다. 현대 이탈리아어 번역본 가운데에는 이런 맥락에서 「유엔」 2절을 '주님 친히 나를 그들 가운데로 이끄셨고 나는 그들과 함께 자비를 체험하였습니다.'로 옮긴 경우도 있는데, 좋은 해석이라 여겨진다. 프란치스코가 죽음을 맞이하며 하느님의 그 은총의 섭리를 유언으로 고백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이런 몇 가지 점을 고려하면, 「유언」 1-3절에는 프란치스코가 희개 초기에 나병 환자들과 함께 지내면서 자비를 베풀었고 그렇게 자비를 베푸는 과정에서 프란치스코 자신이 도리어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했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죽음을 앞두고 나직이 읊조리는 프란치스코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1주님께서 나 프란치스코 형제에게 이렇게 회개를 시작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죄 중에 있었기에 나에게는 나병 환자들을 보는 것이 쓰디쓴 일이었습니다.
2 그런데 주님 친히 나를 그들 가운데로 이끄셨고 나는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자비를 체험하였습니다.
3그리고 내가 그들에게서 떠나올 무렵에는 나에게 쓴맛이었던 바로 그것이 도리어 몸과 마음의 단맛으로 면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얼마 있다가 나는 세속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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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OFS 동서울지구형제회 소식지 제30호(10월호) 애지디오

월보 2019-10월호 통권제 30 호
2019년 10월 25일 발행
2017년 3월 5일 설립
email egidio da@daum.net

발행인 : 정구호 대건안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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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울 에지디오 지구형제회 실천 목표: 권고 말씀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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